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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이곳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서와 누정, 계류와 각자 등 문화경관

요소가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어, 별서정원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석파정의 식생은 47종이 파악되며 자생종이 전체의 70%를

점유하여 자연성과 향토성을 유지하고 있다.

석파정: 투어

공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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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수운련암 각자

소수운련암 한수옹서중 우인정이시 신축세야’


: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

2.  본제

대원군이 예술적 활동을 했던 장소,고종의 임시거처로도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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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랑채

사랑채 건물이나 누마루에 벽돌 이용(문양):


우리나라 전통식과 중국의 건축기법의 조화

4.  별채

벽돌로 지어진 전형적인 중국풍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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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삼계동 각자

석파정은 구한말 안동김씨 세도가였던 김흥근이 별장을 지었을 때는 ‘삼계정’이라 불림

6.  유수성중관풍루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으로 한국의 전통건축양식과 중국의 건축양식이 적절히 조합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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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너럭바위

너럭바위는 인왕산 자락과 석파정이 맞닿은 곳에 형성된 거대한 암벽을 말하며
‘코끼리 바위’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앵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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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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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의 
  이야기

조정만은 석파정의 첫 주인으로, 석파정 이전에 삼계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조정만 다음으로 석파정의 주인이 된 사람은 19세기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1852년 영의정에 오른 김흥근이다.

 삼계동 정사는 김흥근이 별서를 만들기 전부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권상하가 개울 옆 바위에 소수운련암이라는 글씨를 새겼는데, 김흥근이 여기에 별서를 세우고 삼계동정사 라는 이름을 붙였다.


 흥선대원군은 이러한 김흥근의 삼계동 정사를 부러워하였고 김흥근에게 별서의 매매를 종용하였으나 거절하자 계략을 세워 아들 고종을 이곳에 행차해 묵게 하였다.  '임금이 묵고 가신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다' 하여 김흥근이 이곳을 포기하면서 삼계동 별서는 흥선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그의 호가 석파였던 것과 주변이 암석으로 둘러 싸여져 있는 것을 보고 석파정으로 부르게 된다. 

 이하응의 사후 석파정은 일제강점기 왕실 종친들의 사교의 장으로 활용이 되었다가 1948년 일반에 매각된 후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코롬바고아원’, 병원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었고, 1958년에는 석파정 별당채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이후 잦은 소유권 이전을 거쳐 2006년 유니온 약품그룹의 안병광 회장이 낙찰을 받아 입구에 사설 서울미술관(개인)을 개관하고 함께 관리하고 있다.

석파정: 환영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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